리뷰: 천사와 악마
작년에 개봉한 영화를 ((다빈치 코드를 책으로 읽고 영화는 차마 볼 수가 없었다. 이 경우에도 비슷한게 성립할듯 하다)) 이제야 본거긴한데; 여튼 짤막한 감상.
영화 자체는 댄 브라운이 쓴 글 답게 진행된다. 뭔가 영화 만들작정으로 쓴 것인지 구성 자체도 영화만들기 좋게 되어있었음; 약 5시간 동안 벌어지는 일들을, 천주교의 콩클라베(Papal conclave) 를 배경으로 삼아 진행된다. 전체적인 구도는 천주교단 + 로버트 랭던 교수(=이하 주인공 측) vs. 비밀결사인 일루미너티의 형태로 진행된다.
일루미너티가 폭탄(무려 반물질이라니(…))을 설치하고, 네 명의 추기경을 납치하고 이를 차례로 죽이려는 시도를 하고, 이걸 주인공측에서 막으려는게 큰 줄기. 다만 탐정역을 하는듯한 로버트 랭던 교수는, 다빈치 코드에 이어서 여기에서도 열심히 뒷북 탐정질을 하고, 캐릭터들이 참 전형적인 느낌을 준다는건 큰 단점. 이렇게 둔한(혹은 멍청한?) 탐정이라니; 게다가 기호학 교수라는게(그것도 천주교 관련 연구도 하는) 라틴어도 모르고, 그 직계 후손인 이탈리아어도 몰라. Orz
특히 이런 점을 느끼게하는게, 폭탄 수색이라곤 (적어도 스크린 상에선) 전원 공급을 차단하는걸로 추적하는거 밖에 없고, 범인이 짠 시나리오대로 범인 뒤를 쫓기만(…정말로 쫓기만) 하는스토리라는게.
그리고 상당 수의 스토리 전개가 우연에 의존하는 부분이 크다는 것도 단점; 그렇지만 댄 브라운이 “어떻게든 책장을 넘기게 만드는 일"은 잘하기에(이거 칭찬이다), 영화 자체도 그런대로 즐겁게 볼 수 있었다. 특히 로마 시내와 바티칸이라는 역사 유적이 가득한 공간을 뛰어다니는건 정말 매력적.
하지만 전공자로 태클을 안 걸 수가 없다. 극 중에 설치된 폭탄을 무선 카메라 영상으로 보고, 여기에 조명이 켜져있다. 이걸 가지고 폭탄의 위치를 추정하기 위해, 바티칸(+로마?) 곳곳의 조명을 순서대로 껐다 켜서 위치를 추척하려고 시도한다. 근데 이거 보면 굉장히 한심해 보이는데, 이유를 설명하자면,
- 무선 카메라면, 그 신호를 삼각측량하면 된다. 적어도 범위는 대폭 줄일 수 있다.
- 조명이 유선 전원에 연결되어있다는 보장이 어디있지? 극 중에서는 실제로 유선 전원에 연결되어 있긴 했지만…
- 차례차례 하나씩 전원을 차단해서 껐다 켰다하는데, 사실 이건 컴퓨터 공학에서 흔히 말하는 sequential search(순차 검색)에 해당한다. 전체 중 절반만 껐다 켜보고, 만약 조명이 꺼졌다면 그 구역 중 다시 절반에 반복, 꺼지지 않았다면 다른 쪽에서 다시 반복하는 형태로 진행하는 binary search를 했다면 훨씬 빨리 폭탄을 찾았을 것이다.1
정도? 심지어 binary search 같은건 내가 대학 입학할 때 면접 문제 중 하나인 수준인데, 그 많은 주인공 측 인물들이 이거하나 생각 못한다는게 좀 그렇더라.
-
예를들어, 대략 1000개의 구역으로 전원이 분할되어 있다면, sequential search는 최악의 경우 1000번, 평균적으로 500번 시도해야는데 binary search 는 최악의 경우에도 10번만 시도하면 된다. ↩︎